이 단원은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고조선의 법, 삼한의 제정 분리 사회에서 출발해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서로 맞서며 성장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아래 20문항으로는 무덤과 유물, 연표 속 시기, 나라별 특징을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나라 이름을 외웠는지보다 단서를 보고 어느 나라인지 가려내는지를 봅니다.
📝 고대 국가의 형성 시험지 — 20문항, 정답·해설은 뒤쪽 별지
이름
날짜
점수/100
배점 · 20문항 · 한 문항 5점 · 100점 만점 · 권장 풀이 시간 30분 · 기본·보통·심화가 섞여 나옵니다(정답·해설은 별지).
‘PDF 만들기’를 누르면 화면과 같은 문제로 A4 PDF 파일이 내려받아지고, 폰에서도 됩니다. 같은 학년·같은 과목 문제는 하루에 한 번 만들어지고, 그날은 같은 문제가 다시 나옵니다. 인쇄물 맨 위에 이름·날짜·점수 칸이 함께 찍힙니다.
원장 한마디
저는 수학학원을 하는 사람이라 이 단원의 내용을 가르친다고 말할 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시험지 한 장을 집에서 어떻게 쓰면 좋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0문항은 아이가 직접 풀게 하십시오. 무덤과 유물, 연표 속 시기, 나라별 특징을 묻는 문제라 답을 보고 고개만 끄덕이면 푼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틀린 번호는 그 자리에서 고치고 끝내지 마시고, 몇 주 지나 시험이 가까워졌을 때 그 번호만 다시 풀게 하세요. 그때도 맞히면 정말 아는 것입니다.
문제를 많이 푸는 것보다 한 장을 제대로 보는 쪽이 낫다고 저는 봅니다.
— 수학의 신호 원장
고대 국가의 형성 시험지에 나오는 문항 모양
선다
4지선다
단답
단답형
고대 국가의 형성, 무엇을 배우나
먼저 국가가 서기 전 단계입니다. 고인돌은 큰 돌을 옮기려면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 했으므로 지배자의 권력과 계급 분화를 보여 줍니다. 고조선의 법 조항은 생명과 사유 재산을 보호하고 노비가 있는 사회였음을, 삼한의 소도와 천군은 지배자와 제사장이 나뉜 사회였음을 알려 줍니다.
이어서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영토를 다투며 제도를 갖춥니다. 백제는 성왕 때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고쳤으며, 신라는 법흥왕 때 율령 반포와 불교 공인으로 체제를 세웠습니다. 한편 가야는 철을 바탕으로 한 연맹 왕국에 머물다 6세기 중반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시험지에서 뽑아 본 문제
초기 국가와 그 사회 모습을 옳게 연결한 것은? ① 부여 –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소나 말로 변상하는 책화가 있었다. ② 옥저 – 해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③ 삼한 – 제사장인 천군이 신성 지역인 소도를 맡아 다스렸다. ④ 동예 – 혼인 후 신랑이 신부 집의 서옥에서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정답 · ③ 삼한 – 제사장인 천군이 신성 지역인 소도를 맡아 다스렸다. — 삼한에서는 정치적 지배자와 별도로 천군이 제사를 주관하였고, 소도는 죄인이 들어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는 신성 지역이었다. 책화는 동예, 영고는 부여, 서옥제는 고구려의 풍습이다.
다음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ㄱ. 고구려가 율령을 반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ㄴ. 백제가 군대를 보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ㄷ. 신라가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였다. ㄹ. 고구려가 군대를 보내 신라를 침입한 왜를 물리쳤다. ① ㄴ – ㄱ – ㄹ – ㄷ ② ㄱ – ㄴ – ㄹ – ㄷ ③ ㄴ – ㄱ – ㄷ – ㄹ ④ ㄹ – ㄴ – ㄱ – ㄷ정답 · ① ㄴ – ㄱ – ㄹ – ㄷ — 백제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371), 고구려 소수림왕의 율령 반포(373), 광개토대왕의 신라 구원(400), 신라 법흥왕의 불교 공인(527) 순이다. 따라서 ㄴ – ㄱ – ㄹ – ㄷ이 옳다.
다음 연표의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가장 적절한 것은? 371년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함 → 427년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도읍을 옮김 → (가) → 475년 고구려군이 백제의 한성을 함락함 → 538년 백제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김 ①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 동맹을 맺었다. ② 고구려 소수림왕이 율령을 반포하였다. ③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하였다. ④ 백제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정답 · ①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 동맹을 맺었다. — 427년 평양 천도 이후 고구려의 남진 정책이 강화되자, 433년 백제와 신라가 나제 동맹을 맺어 대응하였다. 소수림왕의 율령 반포는 373년, 우산국 복속은 512년, 남부여 국호 개칭은 538년 사비 천도 이후의
(가), (나) 무덤을 비교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가) 벽돌을 쌓아 아치 모양의 널방을 만들었으며, 무덤의 주인을 알려 주는 지석이 함께 출토되었다. (나) 나무 덧널과 널을 설치한 뒤 그 위에 돌을 쌓고 다시 흙을 덮었으며, 금관 등 화려한 껴묻거리가 출토되었다. ① (가)는 신라 초기에 도굴을 막기 위해 널리 조성되었다. ② (가)는 중국 남조 문화의 영향이 나타나고 (나)는 신라 특유의 무덤 양식이다. ③ (나)는 널방 벽면에 사신도가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④ (가)와 (나)는 모두 고구려에서 유행한 굴식 돌방무덤이다.정답 · ② (가)는 중국 남조 문화의 영향이 나타나고 (나)는 신라 특유의 무덤 양식이다. — (가)는 백제 무령왕릉 같은 벽돌무덤으로 중국 남조의 영향을 보여 주고, (나)는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구조상 도굴이 어려워 껴묻거리가 많이 남아 있다. 도굴을 막는 구조는 (가)가 아니라 (나)의 특징이며, 사
시험지는 같은 단원의 기본·보통·심화 문항을 섞어 20개로 냅니다. 위 문제는 그 가운데 몇 개를 옮겨 놓은 것입니다.
고대 국가의 형성에서 헷갈리는 곳
무덤의 특징이 뒤섞입니다 벽돌무덤은 무령왕릉 같은 백제 웅진 시기의 무덤으로 중국 남조의 영향을 보여 주고,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의 것으로 도굴이 어려운 구조입니다. 사신도는 고구려 굴식 돌방무덤 벽화의 특징입니다.
연표 칸을 잘못 고릅니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5세기 후반이라 4세기 후반과 5세기 초 사이에 넣을 수 없습니다. 고구려는 평양 천도 뒤 남진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였습니다.
가야의 두 멸망을 바꿔 외웁니다 금관가야는 6세기 초 법흥왕 때 신라에 항복하였고, 대가야는 562년에 병합되었습니다. 전기 연맹은 백제가 아니라 고구려군의 남하로 타격을 받았습니다.
고대 국가의 형성, 집에서 공부하는 순서
하루 20분 안팎으로 잡고, 먼저 고인돌·소도·천군처럼 단답형으로 나오는 낱말을 한 줄씩 정리합니다. 그다음 부여의 가축 이름 관리, 고구려의 제가 회의, 가야의 덩이쇠처럼 나라마다 붙는 단서를 표 한 장에 모아 둡니다.
다음 날에는 연표를 직접 그려 봅니다. 4세기 후반, 5세기 초, 427년, 475년, 6세기 전반, 6세기 중반을 한 줄에 놓고 백제·고구려·신라의 사건을 칸에 채웁니다. 마지막으로 두 무덤을 구조와 껴묻거리 기준으로 비교해 소리 내어 설명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