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동아시아」 단원은 냉전 체제가 자리 잡은 때부터 국교 정상화, 지역 협력 기구,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다룹니다. 아래 20문항으로는 사건의 선후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지, 가상 표나 연표 같은 자료에서 알맞은 내용을 읽어 내는지, 보기를 자료에 맞춰 고르는지를 확인합니다.
📝 오늘날의 동아시아 시험지 — 20문항, 정답·해설은 뒤쪽 별지
이름
날짜
점수/100
배점 · 20문항 · 한 문항 5점 · 100점 만점 · 권장 풀이 시간 30분 · 기본·보통·심화가 섞여 나옵니다(정답·해설은 별지).
‘PDF 만들기’를 누르면 화면과 같은 문제로 A4 PDF 파일이 내려받아지고, 폰에서도 됩니다. 같은 학년·같은 과목 문제는 하루에 한 번 만들어지고, 그날은 같은 문제가 다시 나옵니다. 인쇄물 맨 위에 이름·날짜·점수 칸이 함께 찍힙니다.
원장 한마디
동아시아사는 제가 풀이할 수 있는 과목이 아닙니다. 그래서 단원 내용은 건드리지 않고, 이 20문항을 집에서 어떻게 쓰면 좋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한 번은 답지를 덮고 혼자 끝까지 풀게 하십시오. 막히는 번호는 그냥 두고 지나가도 됩니다. 채점한 뒤에는 틀린 번호만 골라서 다시 풉니다. 맞은 문제까지 전부 다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틀린 문제는 그날 한 번 풀고 끝내지 말고, 몇 주 뒤 시험 앞두고 한 번 더 풀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또 틀리면 정말 모르는 것이고, 맞으면 그냥 잊었다가 되살린 것입니다. 종이 대신 화면이 편하면 아래 화면에서 풀고 채점하기를 쓰시면 됩니다.
— 수학의 신호 원장
오늘날의 동아시아 시험지에 나오는 문항 모양
선다
사건·제도 순서와 인과
choice
사건·제도 설명
short
자료 해석
오늘날의 동아시아, 냉전에서 협력까지
이 단원은 냉전 체제에서 시작합니다. 1950년대 전후 동아시아는 이념에 따라 둘로 나뉘었고 한반도에서는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으며, 교류는 대체로 같은 진영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의 주권 회복을 이끈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도 이 시기의 일이며, 중국과 한국이 참가하지 못한 점이 한계로 지적됩니다.
냉전이 완화되면서 국교 정상화가 이어집니다. 1972년 중일 공동 성명으로 국교가 정상화되었고 1978년에는 평화 우호 조약을 맺어 관계를 더 발전시켰습니다. 1990년대 초 냉전이 해체되자 1992년 한중 수교로 체제가 다른 두 나라의 경제·인적 교류가 크게 늘었습니다.
지역 협력은 다자 틀로 나타납니다. 1967년 창설된 ASEAN이 중심이 되었고,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중국·일본이 더해진 ASEAN+3에서는 통화 교환 협정 같은 금융 협력이 추진되었습니다. 6자 회담은 여섯 나라가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한 다자 협상입니다. 교류가 커진 뒤에도 역사 인식 갈등은 함께 나타났습니다.
시험지에서 뽑아 본 문제
1992년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은 것의 배경과 의의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냉전이 해체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체제가 다른 두 나라가 경제 교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② 한국 전쟁 직후 두 나라가 군사 동맹을 맺기 위한 것이었다. ③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체결된 조약이었다. ④ 중국이 개혁·개방을 중단하고 세계와 교류를 끊은 결과였다.정답 · ① 냉전이 해체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체제가 다른 두 나라가 경제 교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 1990년대 초 냉전이 해체되며 이념이 다른 나라 사이에도 교류의 길이 열렸고, 한중 수교는 두 나라의 경제·인적 교류를 크게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었다.
다음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가) 일본과 중국이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나) 한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를 맺었다. (다) 한국 전쟁의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① (가) → (나) → (다) ② (가) → (다) → (나) ③ (다) → (가) → (나) ④ (다) → (나) → (가)정답 · ③ (다) → (가) → (나) — 한국 전쟁 정전 협정은 1953년, 일본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는 197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1992년의 일이다. 따라서 (다) → (가) → (나) 순서가 된다.
다음 가상 자료의 공동 문서가 발표된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양국 정부는 불행했던 과거를 되돌아보고 항구적인 평화와 우호 관계를 수립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양국은 이 문서가 발표된 날부터 외교 관계를 맺고, 대사를 교환하며,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는 원칙 아래 경제·문화 교류를 넓혀 가기로 하였다. – 1972년 중일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요약 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는 등 냉전의 긴장이 일부 완화되었다. ② 동아시아 각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 기금을 마련하였다. ③ 소련이 해체되어 사회주의 진영이 사라졌다. ④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유엔군 기지가 되었다.정답 · 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는 등 냉전의 긴장이 일부 완화되었다. — 1972년의 중일 국교 정상화는 1970년대 초 미중 관계 개선 등 냉전의 긴장 완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외환위기는 1997년, 소련 해체는 1991년, 한국전쟁은 1950년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다음 가상 자료에 나타난 활동의 의의로 가장 적절한 것은? A국, B국, C국의 대학 교수와 교사 수십 명이 수년간 정기적으로 모여 근현대사 서술의 쟁점을 토론하였다. 참가자들은 각국 교과서의 서술을 서로 비교하고, 합의된 부분은 공동 부교재로 펴냈다. 의견이 갈린 주제는 각 나라의 시각을 나란히 실었다. 이 부교재는 정부가 승인한 공식 교과서는 아니며, 학교에서 보조 자료로 활 ① 세 나라가 단일한 공식 역사 해석을 확정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② 다른 나라의 서술을 이해하고 대화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③ 정부 간 조약으로 역사 갈등이 법적으로 종결되었다는 의의가 있다. ④ 각국이 자국 교과서의 서술을 폐지하고 공동 교과서로 대체하였다는 의의가 있다.정답 · ② 다른 나라의 서술을 이해하고 대화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 자료에서 이견이 있는 주제는 각국의 시각을 나란히 실었고 교재도 보조 자료일 뿐이다. 이는 단일 해석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서술을 이해하고 대화의 토대를 마련한 활동이다.
시험지는 같은 단원의 기본·보통·심화 문항을 섞어 20개로 냅니다. 위 문제는 그 가운데 몇 개를 옮겨 놓은 것입니다.
헷갈리기 쉬운 곳, 오늘날의 동아시아
사건의 선후 뒤섞기 1950년 한국 전쟁,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은 모두 1972년 중일 공동 성명보다 앞선 일입니다. 연표 문항에서는 (가)의 앞뒤를 먼저 가려야 합니다.
표에서 읽을 수 없는 말 표의 수치가 모두 늘었다는 것과 어느 경로가 가장 많이 늘었는지는 다른 물음입니다. 증가 폭은 숫자로 직접 따져 보고, 자료에 없는 효과를 단정하거나 부정하는 보기도 걸러야 합니다.
갈등과 협력은 함께 나타남 경제 교류가 늘면 역사 갈등이 사라진다거나, 갈등 때문에 교류가 끊긴다고 고르기 쉽습니다. 자료는 두 흐름이 같은 시기에 함께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도쿄 재판도 식민지 피해 배상까지 끝낸 것은 아닙니다.
집에서는 연표부터 세우면 됩니다
먼저 하루 15분쯤 연표 한 줄을 만듭니다. 냉전 체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중일 공동 성명, 한중 수교, 외환 위기 이후의 ASEAN+3 순으로 놓고 사건마다 한 문장씩 적어 보십시오. 순서가 잡히면 연표 문항의 (가)가 어느 시기인지 보입니다.
그다음 20분쯤은 이름을 쓰는 문항을 따로 다룹니다. 6자 회담, ASEAN, ASEAN+3,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은 설명 글과 짝지어 직접 써 보십시오. 마지막 10분은 표와 자료 문항에서 보기 하나하나가 자료의 어느 줄에 근거하는지 말로 확인합니다.